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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화려한 휴가', 5월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다

작성일201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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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최근 MBC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이 부족함을 꼬집고 출연자들에게 역사를 직접 배우고 강의하게 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매달 14일이 무슨 데이(Day)인지는 알면서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날들은 알지 못하는 모습이 대단히 안타깝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이날’에 대해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1980년 5월, 봄이 주는 따뜻한 느낌과 상반되게 차가운 총칼에 의해 광주의 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이 죽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계엄군들에 의해.

  당시 군부독재 세력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그들에게 저항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었고, 그 중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곳이 바로 광주였다.

  즉,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던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난 시민봉기였고 이 항쟁 중 희생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이웃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들이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역사적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자료이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의한 국가권력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었음을 국제사회로부터 공인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연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리고 광주시민들은 5.18 정신을 어떻게 이어오고 있을까. 33년 전 광주에 만연했던 그 정신을 모든 세대가 잊지 않고 공감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가 있다는 소식에 광주로 달려가 보았다.  

 

 

 

 

  1980년 이후 광주의 음악인들은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전국의 뜻있는 많은 예술인들이 동참했고, 1990년대까지 거리공연이 이어져 왔다.

  이후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5월 음악’을 이어왔지만, 세월이 흐르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 흐름이 끊어지고 점점 동력을 잃어갔다.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장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고민들 속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주는 여러 의미와 가치들을 ‘음악’이라고 하는 매개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또 창작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오월을 그려가 보자는 마음들이 모이게 되었다.

 

 

 

  마침내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던 해 2010년. 이러한 마음들을 모아 제1회 전국 오월창작가요제가 시작되었고 짧은 홍보기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그렇게 올해 3회를 맞은 전국 오월창작가요제.

  오월창작가요제라고 해서 주제를 오월에 국한하지 않고, 지나간 오월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오월을 우리 스스로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하며,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가진 좋은 음악, 착한 음악, 함께 나누고 싶은 음악을 찾고자 한다는 운영국의 기획 의도는 굉장히 신선했다.

 

 

 

  4월 8일부터 18일까지, 총 327곡이 오월창작가요제 운영국으로 도착했다. 국적, 나이, 성별에 제한이 없고, 락힙합클래식팝포크재즈민요합창아카펠라 등 장르에 제한이 없으며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건강한 정서가 담긴 창작가요, 시대와 호흡하는 젊은 정신이 담긴 창작가요면 그 누구라도 응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약 10일간의 짧은 응모기간임에도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지원했음을 볼 수 있었다.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가수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음악을 하는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하였는데 1차 예선에서 단 20곡의 노래가 선정되었고, 2차 예선에서는 10곡의 노래만이 선정되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여타 가요제와는 비교되는 빵빵한 상금(대상 1000만 원, 금상 500만 원, 은상 300만 원, 동상 200만 원, 장려상 100만 원)과 편견 없이 음악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전국 오월창작가요제만의 특별함이 많은 지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광주광역시와 광주문화재단, 오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 또한 참가자들의 성원에 부응하여 이 가요제에 공을 많이 들였음을 볼 수 있었고, 앞으로 그 규모를 점점 더 크게 하기 위해 애쓸 것임을 보여주었다.

 

 

 본선 진출 10팀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장르를 불문하고 소재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기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바가 달랐고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 2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노래들을 한 줄의 가사로 소개한다.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보낸 보컬리스트는 대학생활을 타지에서 보내면서 타 지역 사람들에게 5월이 그저 평범한 5월이고, 그 아픔도, 역사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걸 알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 노래를 통해 광주의 오월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드럼, 베이스에 해금이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멋진 재즈 탱고 곡. A trio의 <소녀의 노래>

 * 제3회 전국 오월창작가요제 동상 수상곡

 

 

  

 산뜻한 어쿠스틱 음악으로, 요즘 유행하는 훅 송처럼 반복되는 멜로디와 풋풋한 감성을 담은 가사가 인상적이었던 여성 듀오 달콤씁쓸한의 <달콤씁쓸한>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훨씬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청년들의 체감 불안감은 더욱 커진 요즘 시대 상황을 ‘영자’라는 다소 촌스럽고 친근한 이름으로 대변하여 방황하는 청년들의 시대적 역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온더스팟(On The Spot)의 <영자야 (부제: 이상한 나라의 영자씨)>

* 제3회 전국 오월창작가요제 대상 수상곡 

 

 

 

 

 

  5.18의 의미를 아직 잘 모르던 순수한 아이들이 부르던 맑은 세상. 초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아카펠라 그룹 T.O.P의 <세상은 아름다운 매직>

* 제3회 전국 오월창작가요제 금상 수상곡

 

 

 

 이 외에도 음악, 연극, 뮤지컬 등 무대 위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나타낸 액티버스(Activers)의 . 정의롭지 않은 세상을 바라보는 청춘의 한숨을 표현한 세태풍자곡 밴드 어느새의 <도롱뇽>. 몇 해 전 어처구니 없었던 미디어법 통과 파문 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낸 곡 육교파이터의 <과정은 위법이나 법은 유효하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우리 세대의 자화상을 부른 페익스 오프(Feiks off)의 <삼포 가는 길>. “본 적은 없지만 기억나는 건 왜일까, 남겨진 이들이 아직도 아픈 건 왜일까”라는 가사가 아련하게 전해졌던, 5월의 숭고한 정신과 인권을 노래한 아날로그루브(Analo Groove)의 <오월의 기억>. 오늘은 승리하고 어제는 패배하고. 결과가 나지 않는 삶들의 허망함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지 노래한 파나류당의 <우린 승리했고>까지 10곡 모두 5.18 정신에 부합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개성을 살려 광주의 오월을 노래했다.

 

 

 

  전국 오월창작가요제의 조직위원회의 윤형호 사무국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벌써 33살이다. 이 사건을 겪지 않은 사람들 또한 박물관에 기록된 것으로 5월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5월을 만들도록 해보고 싶다”며 전국오월창작가요제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보여주었고 그는 더불어 이 가요제가 100회쯤 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알 수 있지 않겠냐며 앞으로도 이 가요제가 여타의 유명 가요제들보다 더 의미 있는 예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며 지속적으로 가요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전국 오월창작가요제를 통해, 그 당시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의 아픔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당시 광주에서는 항쟁기간 동안 치안 부재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이나 금은방 등에서 절도 한 건 발생하지 않았고,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행렬이 줄을 이었으며, 모든 경로가 차단되어 언제 식량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서로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그 순간을 함께 버텨냈다고 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이성적, 초 도덕적 투쟁이자 인권, 평화, 화합의 정신을 보여준 5.18 광주민주화운동. 

  누구보다 자유를 원했고, 평화를 원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당연하게만 여기는 오늘의 자유가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그날의 정신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해.

   광주의 오월은 계속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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