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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한장. 두 개의 시선 한 장의 사진

작성일20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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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2013년 6월 25일 부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63주년을 맞게 된다. 역사에 점차 무지해지는 사람들을 위해 수원 역사 박물관에서는 2013 수원박물관 특별 기획전을 선보였다. 2013년 4월 19일에 개막해 오는 6월 23일까지 진행되는 ‘옛 수원 사진전’은 1900년부터 1960년대의 수원 사진과 수원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부제는 ‘렌즈 속, 엇갈린 시선들’. 과거 수원의 사진을 통해 옛날 우리나라의 식민지 시대와 남북전쟁 그리고 전쟁 후의 모습을 시대별로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 전시회의 기획의도 

 

‘사진’은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이다. 지금은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사진 한 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진은 찍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 전시회는 시대 별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찍힌 사진을 통해 과거 수원이, 수원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총 3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1900년대 이전부터 1940년대, 식민지 시대의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 수원의 모습. 1950년대 전쟁으로 인해 고아, 이산가족의 발생과 폐허가 되어버린 수원을 미국인의 시선에서 본 모습. 마지막 1960년대 전쟁 종료 후 잃어버린 희망과 꿈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는 수원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의 손으로 그려내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같은 수원이지만 시대나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사진 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사진 속 엇갈린 시선으로 들어가보자. 

 

 

# Part 1. 식민지의 초상 제국의 시선으로 본 수원 

  

먼저 1900년대 이전부터 1940년대의 제국의 시선으로 본 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우리가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전시되어 있는 사진을 찍은 주체는 바로 식민지 권력. 일본인들에 의해 찍힌 수원의 모습이기 때문에 제국의 시선으로 본 수원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세계적으로 제국의 물결이 동아시아를 넘보던 시절, 우리는 제국 일본에게 강압적으로 나라를 빼앗겨 버렸다. 일제는 병합 이후 폭압과 수탈의 식민지 통치를 ‘조선의 근대화’라 미화시켰고 이를 호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 최일선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있었던 것이다.

 

왼쪽부터 ‘수원의 여학교 학생들과 방한모를 쓴 여인들’, ‘가게 앞 조선인과 순사’ / 사진 곽다혜  

 

 왼쪽의 사진은 ‘수원의 여학교 학생들과 방한모를 쓴 여인들’이라는 작품이다. 추운 겨울 매서운 날씨 속에 여학생들의 표정은 추위와 어색함 때문인지 낯선 시선에 응하지 않고 어른들만이 따뜻한 방한모를 쓴 채 카메라를 든 독일 선교사의 시선에 화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가게 앞 조선인과 순사’ 로써 짚신을 파는 잡화상 앞에서 찍은 작품이다. 왠지 당당해 보이는 일제 통감부 순사는 렌즈의 정면을 의식하고 있지만 하인이었던 조선인은 애써 현실을 외면하듯 렌즈를 피하고 있다. 위의 사진 모두 낯설어 하는 시선과 아무렇지 않은 듯한 시선이라는 두 가지의 시선을 한 장의 사진에 담고있다.

  

순서대로 '수원읍사무소와 소방기구 창구', '송산공립보통학교', '성안의 일본식 가옥과 전봇대' / 사진 곽다혜 

 

 위의 사진들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 통치하면서 점차 근대화 되어가는 조선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왼쪽 상단의 ‘수원읍사무소와 소방기구 창고’ 라는 작품은 1931년에 수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읍사무소는 식민지배의 말단행정기구로 수탈과 침략의 상징이었다. 하단에 위치해있는 ‘송산공립보통학교’ 라는 작품은 일제 식민지 규율의 획일성을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정렬된 책상과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교단 위 선생님과 칠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오른쪽 상단의 ‘성 안의 일본식 가옥과 전봇대’ 작품은 초가집만 즐비했던 도시 풍경 속 중간중간 튀어 오르듯 이질적인 일본식 가옥과 전봇대가 들어서면서 식민지적 도시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Part 1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찍혔고 이를 통해 그들은 식민지가 된 조선을 나타내고자 했다. 일본식 가옥, 전기, 여관, 일본식 교육 등 조선이 점차 근대화 되어 가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봉건적이고 낙후된 조선을 자신들이 근대화시킨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항상 제국의 시선이 숨겨져 있었다.

 

 

 # Part 2. 전쟁의 그늘 타자의 시선으로 본 수원 

 

‘전쟁의 그늘’이라는 컨셉의 수원은 1950년대 남북 전쟁과 남북 전쟁 이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념의 대립으로 나뉜 남과 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다. 수원은 삼남으로 내려가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폭격으로 인한 전쟁의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수원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남으로 피난을 떠나고 타지의 사람들이 새로이 수원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쟁은 이전과는 또 다른 이방인을 수원으로 불러들였다.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온 미군들이 수원과 오산의 비행장에 주둔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참전한 전쟁의 현장과 수원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들의 시선에 비춰진 수원과 수원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왼쪽 상단, '반파된 장안문과 탱크, 그리고 군인들' 오른쪽 하단, '수원역 피난행렬' / 사진 곽다혜 

 

왼쪽 상단의 ‘반파된 장안문과 탱크, 그리고 군인들’은 6.25전쟁이 발발한 뒤 폭격에 의해 누각이 반파된 장안문과 그 앞을 통과하고 있는 탱크는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 복원된 장안문의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오른쪽 하단은 ‘수원역 피난행렬’이라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다. 최소한의 짐만을 꾸려 기차 지붕에까지 올랐던 수원 사람들, 전쟁은 이산가족이라는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생존을 위해 떠나는 렌즈 속 그들의 모습은 슬픔, 시련, 아픔, 이별, 죽음 등 수많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 

 

 순서대로 '방화수류정 피난민촌', '장안문 북동적대 앞 탱크 위의 아이들', '전쟁 폐허 속의 소년',  

'화성애육원의 아이들' / 사진 곽다혜  

 

첫번째 사진은 '방화수류정 피난민촌'을 그려내고 있다. 수원에도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였고 그 곳은 새로운 마을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살 곳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나무나 돌을 이용해 막집을 짓고 피난민촌을 형성했다. 현재는 화성 복원 사업으로 인해 철거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형성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은 '장안문 북동적대 앞 탱크 위의 아이들'로서 모든 것이 사라진 수원의 아이들은 탱크 위에서 놀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속 탱크는 차디찬 전쟁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다. 세번째로 보이는 '전쟁 폐허 속의 소년'이라는 작품은 폐허가 된 전쟁터 속에 부모를 잃고 홀로 앉아 있는 아이를 통해 당시 고아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네번째의 사진은 ‘화성애육원의 아이들’이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손을 뻗은 아이들의 표정은 불쌍하게 보이려는 것인지 구호품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인지 알 수 없으나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보인다. 용주사에서는 전쟁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화성애육원’이라는 보호시설을 운영했다. “Give me a Chocolate” 1950년대를 상징하는 문장인데 위의 사진과 참 잘 어울리지 않은가

  Part 2의 사진들은 전쟁에 참전한 미군이나 미국 기자들에 의해 찍힌 사진들로 보고만 있어도 전쟁의 아픔과 슬픔이 묻어 나온다.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산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를 잃은 수많은 고아가 생겨났다. 무자비하게 죽어나간 사람들과 폐허가 된 도시. 우리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똑같지 아니한가.

 

 

# Part 3. 수원의 재발견 자아의 시선으로 본 수원  

 

1960년대 이후의 모습으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찍은 사진들도 있고 일제 강점기에 찍힌 사진들도 있다. 즉, 자아의 시선으로 본 수원. 1960년대, 전문가 집단이 아닌 생활에 여유가 있던 계층들이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사진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의사’들로 수원에서 병원을 개업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겼고 그들 스스로 사진 동호회를 만들었다. 일상적인 수원의 모습뿐 아니라 연출된 사진들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일어선 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부터 '수원역 앞 풍경' , '동심', '경부선 통학생 일동 기념 촬영하다' / 사진 곽다혜 

 

좌측에 있는 작품은 ’수원역 앞 풍경’이다.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수원고농 학생들과 기차 타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도착할 이들을 기다리며 사람들의 설렘이 가득 담겨 있는 수원역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우측 상단의 ‘동심’이라는 작품에서는 허물어진 봉돈 위로 아이들의 웃음꽃을 볼 수 있다. 따로 또 같이하는 유년 친구들의 표정은 그래서 닮은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측 하단의 ‘경부선 통학생 일동 기념 촬영하다’는 작품은 경부선으로 통학하던 이화여고 ‘합동숙’ 학생과 그의 친구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순서대로 ‘대한독립만세’의 연을 날리다’, ‘더운 여름을 이기는 아이들의 물놀이 한판’,  

‘골목친구들과 함께 엎어 뒤짚어!’ / 사진 곽다혜 

 

왼쪽 사진은 ‘‘대한독립만세’의 연을 날리다’라는 작품으로 의사 홍의선씨가 직접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다. 대한독립 기념비 위에 올라간 아이들이 연을 날림으로써 자유와 해방이라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가운데 작품은 ‘더운 여름을 이기는 아이들의 물놀이 한판’으로 아이들이 모두 홀딱 벗고 해질녘에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활기차고 걱정거리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른쪽의 ‘골목 친구들과 함께 엎어 뒤짚어!’라는 작품은 마땅히 놀이터도 없던 시절, 골목은 아이들의 차지였고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는 마을의 활력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Part 3의 작품들은 1950년대 이후 교육과 문화, 경제를 이끌어가는 새 시대의 희망으로 재탄생된 수원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를 우리는 스스로의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뛰노는 아이들과 빨래하는 아낙네들은 사진 속 일상이 되었고, 활기로 가득 찬 학교, 여가를 즐기는 거리의 사람들은 소소한 기록이 됨을 알 수 있다. 한층 밝아진 사람들의 모습과 평화로움을 되찾은 수원의 모습을 보며 1950년대 전쟁 당시 수원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 감성 더하기. 수원 사진관 & 느린 우체통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원의 옛 사진관과 1930년대의 모습을 재현한 빨간 우체통 / 사진 곽다혜 

 

1967년 팔달산 위에서 내려다 본 수원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1960년대 당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느껴볼 수 있다. 휴대폰 카메라에 담긴 옛 수원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196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엽서 보내기 체험으로 만들어진 느린 우체통은 1930년대의 우체통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1년 뒤 나에게 혹은 가족 및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정확히 일년 후 그들에게 배달해 준다고 한다. 일년 후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또 하나의 추억을 배달해주는 느린 우체통.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이동근씨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은 쉽게 보지 못했던 모습을 사진을 통해 봄으로써 신기함과 새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어른들은 옛날 생각과 추억에 깊이 빠진다’며 ‘지금의 세상이 다변화되고 다각적으로 변화하면서 각박해졌다. 살아가는 것이나 물질적으로는 불편했을지 몰라도 그 때 당시가 정이 넘치고 삶의 활기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이 전시회를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던 수원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 속 엇갈린 시선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렌즈 속, 엇갈린 시선들’에 전시된 약 80여 개의 작품들은 한 장의 사진 속, 두 가지 시선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진이란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사진의 의미가 변화될 수 있으므로 그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잔인한 현실 속에서 희망과 꿈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희미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의 현실의 안타까움과 소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는 6월 23일 일요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 다녀와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다시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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