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휴전 60주년, 끊어진 한반도의 허리를 찾아가다

작성일2013.07.21

이미지 갯수image 6

작성자 : 기자단

 

가자, 북쪽으로! 

 

1950년 6월 25일 이후 3년동안 한반도를 할퀴었던 전쟁은 3년이 지나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끝났다. 이후 남과 북은 휴전선을 맞대고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전쟁의 흔적은 쉽게 찾아 볼 수 없게 됐지만, 아직도 휴전선이 그어진 인근 지역은 그 때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바야흐로 휴전 60주년을 맞은 올해 7월, 나는 생생한 분단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경의선에 몸을 싣고 북쪽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들은 민간인 통제구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신분증 검사를 거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움직이는 등 자유로운 취재에 제약이 따르기도 하였다.

 

 

북쪽으로 향하는 첫번째 역, 도라산역

 

 도라산역은 우리나라 기차 노선 중 하나인 경의선의 종착역으로서 경의선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역사이다. 이 역에 가기 위해서는 임진강역에서 하루 2번 출발하는 통근열차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통한 안보관광을 통해서 방문 할 수 있다. 이 역의 특이점은 바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역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도라산 역에는 출경(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위한 시설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 언젠가 과거 서울과 신의주를 잇던 경의선이 모두 복구되면 도라산역은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벗어나 해외로 떠나는 출발역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역 밖은 평화공원과 출입국사무소 등이 있지만, 09년 한 민간인이 무단으로 월북을 시도한 이후 출입이 금지되어 안타깝게도 지금은 역사 인근 이외에는 볼 수 없다.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는 현장, 도라산 전망대와 제 3 땅굴.

 

 

도라산 전망대는 북한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최북단 전망대이다. 해발 153m인 도라산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서는 휴전선 너머의 개성공단, 송악산, 기정동마을 등 북한의 현 모습을 생생하게 관람 할 수 있다. 비록 보안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직접 쌍안경을 통해서 처음으로 북한에 게양된 인공기를 바라보니 '저곳이 진짜 북한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신기하기도 했다. 쌍안경을 돌려서 개성공단에 초점을 맞춰 보았지만, 최근에 일어난 폐쇄의 여파로 인해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3땅굴이다. 이 곳은 현재까지 발견된 총 4개의 땅굴 중에서 1978년에 3번째로 발견된 곳이므로 제3땅굴이라 명명되었다. 이 땅굴은 지하 약 70m에 파여져 있으며 총 길이가 무려 1.6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 터널로, 북한이 침공시 1시간에 약 1만명이 이동 할 수 있는 규모라 한다. 발견된 이후 2002년 리모델링이 되어 현재는 도보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200m 정도의 구간을 방문객들이 직접 걸어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땅굴 안에는 천장이 낮기 때문에 어른의 경우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며, 지하 깊숙히 위치한 까닭에 한여름인데도 기온에 20도 안팎으로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갈등과 반목의 세월을 넘어, 평화의 교두보로 거듭나길.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곳은 민통선에 있는 유일한 마을인 통일촌이었다. 이 곳은 지난 60년 간 평화의 상징으로서 453명의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현재 이 마을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개성육로관광 등이 중단되면서 마을의 경기가 급속도록 침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최근에는 공공기관들이 의욕적으로 DMZ 관광을 육성하면서 다시금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지만, 관광시간의 제약 등으로 예전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DMZ 투어를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본 뉴스에는 개성공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 대표단이 당일 오전에 회담을 가졌지만 결국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씁쓸한 기사가 보였다. 남북 간에 휴전협정이 체결된지 60년이 된 지금, 아직도 분단은 현재진행형으로 한반도를 가르고 있다. 과연 이 단어를 과거형으로 부르게 될 날은 언제일까 훗날, 남북간의 왕래가 잦아지는 순간이 오면 오늘 보았던 가깝지만 한없이 멀었던 그곳을 향해 다시 한번 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 위에 하루빨리 평화가 자리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

SNS 로그인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할 계정을 선택하세요.